미군기지 이전사업, 본격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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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이전사업, 본격 추진
  • 배문호
  • 승인 2023.03.12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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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세금이 대폭 투입되었다.
배문호 작가(토지주택대학교 겸임교수, 도시계획학 박사)​
배문호 작가(토지주택대학교 겸임교수, 도시계획학 박사)​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Jim Rogers)라는 사람이 있다. 2000년 초에는 그를 아는 사람이 국내에는 별로 없었다. 이 무렵 난 그의 책을 읽고 세계여행을 꿈꾸기도 하였다. 그는 199911일부터 200215일까지 만 3년을 자동차를 타고 세계일주 여행을 한 아주 독특한 인물이다. 그 기록물이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Adventure Capitalist)(2004)라는 책이다. 그는 세계 일주여행 동안 한국에도 왔었다. 이 책에 실린 그의 견해에 따르면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 국방부 덕분이라는 것이다. 미국 인디애나 주 면적(94,321)보다 약간 큰 나라(100,210)37개의 미군기지가 있고 미국이 이 기지를 통해 지난 50년 동안 수십억 달러의 지원을 한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은 1945~61년간 미국과 UN으로부터 총 313,730만 달러의 원조를 받았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은 세계에서 미국 원조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였다. 미국 원조는 1970년에 끝났다. 한국전쟁 직후 1954~61년간 FOAICA (대외사업처 국제협조처) 원조로 174,380만 달러, PL480(공법480) 원조로 2260만 달러 등 모두 208,834만 달러에 이른다. 한국은 미국 원조에 힘입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었고, 정부 재정이 파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를 발판삼아 2023년의 선진국 대한민국이 되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는 이명박 정부 기간인 201021일부터 2013131일까지 LH에서 만 3년을 주한미군기지 이전 사업에 매달렸다. 실무책임자였다. 서울이라는 대한민국 수도의 배꼽 부분에 해당되는 용산은 외세의 상징이다. 임오군란(1882)후 청나라 군사, 일제 강점기 일본군, 해방 후 미군이 주둔하였다. 한 나라 수도에 외국군이 주둔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1953년 휴전 이후 체결된 ·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우리 땅에는 미군이 상주하여 우리나라 안보의 일익을 담당한다. 미군의 주둔은 한미주둔군지휘협정’(SOFA : Status Of Forces Agreement)에 의해 필요한 토지를 공여(供與)해 왔다. 2007년까지 총 92개 구역 7,320만 평이나 되는 막대한 땅이다.

  미군기지 이전사업은 한국 정부의 이전요구와 미국 정부의 주한미군 재배치계획이 합치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 정부에 공여되어 주한미군의 주둔지로 사용되어 온 용산 미군기지는 그 위치상 민족 자긍심이나 도시발전 측면에서 이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오다가 1987년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기지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하여 19883월 한미 양국 간 협의가 시작되었다. 19906월에 용산기지 이전에 대한 기본합의서(MOA)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으나 1993년 들어 김영삼 정부가 사업여건이 성숙할 때까지 이전사업 보류를 요청하여 진행이 중단되었다. 또한, 경제발전에 따라 도시화의 진행으로 미군기지 입지여건 부적합, 시설 노후화로 인한 복무여건 열악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어 한미양국은 주한미군 재배치계획을 재추진하게 되었다.

  결국, 미군기지 이전사업은 전국에 산재한 미군기지를 평택 등으로 재배치하는 사업이다.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용산기지 이전계획(YRP : Yongsan United States Forces Relocation Plan), 연합토지관리계획(LPP : Land Partnership Plan), 2사단 재배치계획으로 추진되는 사업이다

  YRP는 주한미군이 서울에서 사용하고 있는 시설과 구역을 한국 측에 반환하고, 한국은 현재 서울에서 주둔하고 있는 주한 미군이 사용할 토지와 시설을 평택지역에 제공하며, 이전에 필요한 용역과 기타 경비를 부담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LPP와 미2사단 재배치계획은 서울 등 도심지에 있는 미군 기지를 조기에 반환하고, 한강 이북의 미2사단을 단계적으로 통합해 한강 이남으로 20081231일까지 이전하는 것이다. 전국에 있는 60개 기지를 전방권, 중부권(평택), 남부권 3개의 허브지역 25개 기지로 통합 이전 재배치하는 것이다. 러나 계속 연기되었다.

  이전 비용은 이전을 요구한 측에서 부담한다는 원칙에 따라 YRP에 해당하는 시설은 한국 재원으로, LPP에 해당하는 시설은 미국 재원으로 이전한다. 이전하는 평택미군기지는 세계 최고의 현대화된 군사도시가 된다. 기존의 캠프 험프리Camp Humpherys) 기지를 확장하는 형태이다. SOFA에 의해 평택에 무상 공여되는 땅은 약 444만 평이다. 공여 후에는 미국 측 땅이 된다. 여기에 한국과 미국이 513동의 군사시설과 각종 편의시설 건물들이 건설된다.

  반환되는 기지가 전국적으로 산재되어 있고 전체 공여구역(7,320만 평)의 약 70%45개 구역 5,167만 평이나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미군주둔이 해당 도시발전의 저해요소가 되어왔고 해당 지자체는 지역발전을 위하여 반환공여지의 활용방안에 대하여 고민을 하게 된다. 노무현 정부는 200629일에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을 제정한다. 특히, 수도권 접경지역은 새로운 지역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다.

  주한미군을 전방 철책에서 후방으로 이전하려는 계획은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래된다.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은 지연되다가 김대중 정부에서 200111월 한미 양국 국방장관 간에 합의가 이루어졌고 20022월 김대중 대통령의 승인으로 미군기지 이전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어 200210월 국회비준을 받았다. 200355,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 대통령사이 정상회담에서 용산기지 조기이전 및 미2사단 신중 배치를 합의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정부에 공여(供與)되어 주한미군의 주둔지로 사용돼 온 미군 기지를 이제는 국력에 맞게 자긍심이나 도시개발 측면에서 이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회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협정()이 채택되고 200410, 용산기지이전협정 포괄협정(UA) 및 이행합의서(IA)LPP수정협의서에 양국 SOFA합동위원장이 서명하고 2004129일 국회비준이 이루어져 20041217일 발효되었다. 2007530일에는 주한미군 재배치계획에 의거 서울 용산 garrison 48개소 4,174만 평이 한국정부에 반환되었다.

당시 주공은 2003년부터 주한미군 재배치에 필요한 재원 조달과 반환 부지를 활용할 방안을 마련하는 데 대해 국무총리실과 국방부에 자문을 시작한다. 20044월 국무총리실 주한미군대책기획단에서 이전 부지의 매수와 관련해 전문가 2명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해와 주공 직원을 파견하였다. 11월에는 국방부로부터 이전 대상지역의 보상업무를 위탁을 받아서 1223일부터 평택예정부지 토지보상을 수탁한데 이어 20055, 50여 명의 인원으로 이전사업지원TF팀을 구성하였다.

당시 주택사업 외에 사업다각화를 고민하던 주공은 미군기지 이전사업을 통해 사업역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주공은 1984~1988년 육해공군 3군사령부를 충남 계룡대로 옮기는 ‘620 사업을 시행한 경험이 있어 군사시설 이전사업에 자신감이 있었다. 주공은 20066월 용산미군기지 이전사업 공동수행을 국방부(MND)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국방부에서는 공병(工兵) 중심으로 자체 수행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주택건설 및 도시개발 경험이 풍부하고 재원조달 능력과 전문 인력을 보유한 주공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사업의 핵심은 재원조달이었다.

주공은 국방부에 국유재산법 상 기부대양여 방식을 제안했다. 국방부의 양여 대상은 3개 산재부지(용산의 유엔사와 수송부 부지, 삼각지의 캠프킴)와 한남동의 리블로베럭스를 포함한 4개기지(236,835, 33,919억 원)이였다. 주공은 이러한 부지 가격에 상응하는 기부대상 시설(행정, 주거시설 등 104, 34,030억 원)을 건설하여 기부하는 방식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77월 기부대양여 방식이 확정되었으며, 같은 해 1115일 주공 사장(박세흠)과 국방부 장관(김장수)주한미군시설사업 시행 협약이 체결되고 12월에 노무현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다. 협약 체결 후에는 업무수행절차서 작성, 기존 기부목록을 재조정하고 20111130일에는 국방부와 LH간에 한차례 협약서를 개정을 하였다. 이 협약서 개정은 총리실, 국방부, 국토부, LH의 이해관계가 상이하여 지난한 과정을 거쳤고 실무책임자였던 내게는 너무도 힘들었던 기간이었다.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은 한·미 양국 간의 합의와 협력에 따라 진행되는 대규모 사업으로 단계별로 다수의 계약자, 사용자 등 이해관계자가 관여하므로 각자의 역할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고도의 관리기술력을 갖춘 사업관리조직이 필요하였다. ·미당국은 종합사업관리를 약속하고, 20076월 종합사업관리를 담당하는 PMC(Program Management Consortium)건원 CH2M Hill 컨소시움을 선정했다. 또한, 설계와 시공을 성공적으로 관리하고자 한·미 발주자와 PMC로 구성된 종합 사업관리조직(PMO)을 구성했다. 국방부, USFK(주한미군), FED(미 극동공병단), PMC와 수많은 시공사 등이 철저한 분업을 거쳐 사업을 진행한 것이다.(한미프로젝트 협상구조 그림 참조)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미군기지 이전사업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200910LH로 통합이후 상황은 약간 바뀌었다. 하루 이자만 100억 원에 달하는 부채 문제 해소에 LH는 골몰하고 있었다. LH의 주력사업도 아니고 대규모 자금이 선 투입되는 이전사업은 골칫거리였다. 당시 LH 이지송 사장은 공공연히 사업철수를 지시했으나 실무진은 나중에 양여(讓與) 받을 땅을 매각해 충분히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설득했다. 결국 사업규모를 다소 줄여 사업을 계속 수행해 나가기로 한다.

LH2015년에 반환받을 부지에 대해 단계별로 선()양여를 추진했다. 이미 투입된 기부물건 가액에 해당하는 양여 토지가 있으면 사업이 모두 완료되고 양여를 받는 것이 아닌 먼저 토지를 양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유엔사 부지는 이미 공여해제가 되어 당장 활용 가능한 상태였으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고 해당 부지를 조기 개발함으로써 경제 활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국방부와 기재부는 모두 난색을 표했지만 결국 2015513국유재산법 시행규칙개정으로 해결되었다.

이후 국방부와 협의하여 201586일에 니블로베럭스 부지 양여에 관한 합의서를 작성, 서명하고 20161월 국방부로부터 부지(60,705) 양여를 완료하고 같은 해 56,242억 원(양여가액 5,506억 원) 부지를 민간에 매각하여 건설대금 일부를 환수한다. 그리고 유엔사 부지(29,545)20161122일 국방부로부터 양여 받아 20176, 1552억 원(양여가액 7,702억 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하여 20211217일 잔금도 모두 회수하였다. 총 사업비 34천억 원 중 약 49% 정도인 16천억 원 이상이 회수된 것이다.

한편, 평택미군기지내 시설물 건설공사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평택에 건설되는 주요 시설물 대부분은 이명박 정부시기에 대부분 발주가 이루어지고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국내 언론에 잘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건설업체 대부분이 이곳에서 시공을 하고 돈을 벌었다. 이것도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랜들리(business friendly) 정책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사업에 투입된 예산이 총 얼마인지는 아직까지 베일에 쌓여있다. LH35개 프로젝트 건설을 담당했는데 주로 부지조성 토목공사, ··고교, 차량정비시설, 군인가족주택, 다운타운 및 미드타운 편의시설, 골프장 등의 시설물을 맡았다. 한국 땅이기는 하지만 미군기지라는 특성상 국내법과 미국 규정을 모두 충족시켜야 했다. 한국 땅에서 미국 스펙을 맞추다 보니 두 배 이상의 노력이 들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러한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국책사업에 수십조 원의 국민 세금이 들어갔을 것이다. 2011729, 국방부관계 장관회의 보고 자료(미군기지 이전사업 추진현황 및 현안)에 의하면 한국 측이 88,670억 원(건설비 5341억 원, 사업지원비 38,329억 원), 미국 측이 71,674억 원(건설비 48,476억 원, 주택비 23,198억 원), 16344억 원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까지 대한민국 정부는 구체적으로 얼마의 자금이 투입되었는지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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