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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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성격
  • 배문호
  • 승인 2023.03.2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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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정치 시대, 국가란 무엇인가?
배문호 작가(토지주택대학교 겸임교수, 도시계획학 박사)​
배문호 작가(토지주택대학교 겸임교수, 도시계획학 박사)​

박근혜 정부는 2013225일부터 201759일까지 42개월 14(1,475) 동안 대한민국 국정을 운영한 제6공화국의 여섯 번째 정부이다. 헌법이 정한 5년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2016123일 국회의원 171명이 발의한 대통령(박근혜) 탄핵 소추안129일 국회 무기명 비밀투표로 의결되어 당일 헌법재판소로 이송되었다. 박근혜(1952)2017310일 오전 1121, 헌법재판소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필자는 당시 서울 영등포에 있는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이 장면을 TV로 보면서 역사적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되었다. 박근혜는 촛불혁명이라는 국민들의 저항권 행사로 인해 헌법에서 정해진 절차에 의해 탄핵당한 최초의 대통령이다. 탄핵선고문 마지막 부분에는 이렇게 적시되어 있었다.

결국 피청구인(박근혜)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함으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20121219일 치러진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75.8% 투표율로 직전 대통령 선거 투표율(63.0%) 보다는 많이 올라갔다. 선거결과 여당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의 대표를 지낸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수많은 실정에도 불구하고 보수정권의 재창출이 이루어졌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외신들은 독재자의 딸, 대통령이 되다라며 냉소적으로 보았다.

2012년은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였다. 보수정권이 계속 이어지느냐, 아니면 진보정권이 다시 권력을 되찾느냐가 관심이었다. 그런데 국민들 가운데는 여당인 한나라당이나 야당인 민주당에 다 같이 실망하여 제3당의 출현을 고대하는 정서도 만만치 않게 있었다. 이런 정세에 혜성처럼 나타난 제3 정치세력이 안철수였다. 안철수는 실체도 모호한 새정치를 주장하며 중도적, 실용적 대안정치 세력으로 떠올랐다그러나 대통령 후보자 경선에서 한나라당에서는 대표를 지낸 박근혜가 앞도적인 지지를 얻어 후보로 확정되고, 민주당에서는 친노무현 그룹의 문재인(1953)의원이 손학규를 누르고 후보로 확정되었다.

안철수는 개인적인 인기는 높으나 정치세력으로 조직화되지 못한 것이 큰 약점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와 문재인의 양자대결에서 박빙의 오차 범위에서 승부가 갈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여당은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꿔 당명을 분식(粉飾)하고 문재인이 노무현 정권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재임 중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의 북방한계선(NLL) 발언을 문제 삼아 종북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야당은 국가정보원 직원이 인터넷 댓글로 선거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과 유신 잔당의 부활로 공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선거결과 박근혜가 51.6%, 문재인이 48.0%의 득표를 하여 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새로 출범한 박근헤 정부는 행복주택, 행복연금, 행복복지센터 등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국민행복시대와 복지정책을 국정목표로 내세우고 탕평정치를 통한 국민화합을 자주 언급했다. 그러나 나라는 국민 불행시대로 치달았다.

2012년 4월 출범한 김정은의 북한은 로켓을 발사하여 우주궤도에 진입시키고 2013212일에는 제3차 핵실험을 성공시킨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까지 개발하고 자신들의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다.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정책을 내걸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진정성을 보이면 북한을 돕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제재는 더욱 심해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북한은 국제적 고립에 빠지고 영변의 핵시설을 재가동한다. 미국과 남한에 대해 전쟁도 불사한다는 협박성 발언을 쏟아내어 20132월에서 6월에 걸쳐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만들었다. 북한은 201343일 갑자기 개성공단 기업의 출입을 막고, 5만 명의 노동자들을 철수하는 조치를 내렸다. 정부는 이에 맞서 개성공단의 전기를 단전하고 우리 측 인원과 물자를 반출하고, 공단을 폐쇄할 뜻을 암시하면서 회담을 제의하자 북한 이에 응하여 실무회담을 열었다.

그러나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우리 측의 요구를 놓고 여려 차례 실무회담에서 신경전을 펼친 끝에 앞으로는 쌍방이 공동으로 공단을 운영하고 폐쇄하며, 공단을 국제화시키고 3통 문제(통행, 통신, 통관 문제)를 개선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로써 공단이 폐쇄된 지 166일 만인 916일 공단이 재가동되었다. 공단폐쇄로 피해를 보는 것은 북한이 더 크기 때문에 한국정부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하여 문제가 타결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내치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정부의 내각인사는 청문회를 거치면서 그 밑바닥을 드러냈다. 윤창중 대변인을 시작으로 국무총리 후보 3명이 낙마하는 인사 참극이 거듭되었고, 대선 당시 논란이 되었던 국정원 댓글사건과 북방한계선 포기발언, 선거공약으로 내 걸었던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등 각종 복지정책이 크게 후퇴하게 된 것이다. 국민들은 서서히 박 정부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예고하는 사건은 취임 후 1년이 조금 지난 뒤에 벌어졌다. 2014416, 바로 세월호 참사였다.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을 포함한 504명의 승객을 태운 채 침몰한 것이다. 국민들이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304명의 생명이 희생되었다. 이날 박대통령은 사고가 심각하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사건이 발생한 후 7저작권자 © 서프라이즈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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