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위’의 관계 시리즈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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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행위’의 관계 시리즈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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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9.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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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사랑의 이중 계명을 행함이 생명의 법이 된다.
김창수 목사(은혜로 교회 담임목사. 장로교합동 총신신대원 졸)
김창수 목사(은혜로 교회 담임목사. 장로교합동 총신신대원 졸)

하나님은 구약시대 때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자신이 구속주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심으로써(20:2; 5:6) 십계명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법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에 대한 보답의 법인 것을 암시하셨다. 영생을 얻기 위한 행위 언약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언약 백성이 되었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은혜의 법으로 십계명을 주신 것이었음을 암시하신 것이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은 십계명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계명으로 요약하심으로써 율법 안에 복음을 숨겨놓으신 것이라는 사실을 보이셨고, 계명을 주신 본래적인 의도를 알고 순종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나타내신 것이다(12:28-34). 즉 두 계명 지킴을 요구하신 경우에도 먼저 하나님을 유일신 하나님으로 나타내심으로써 계명 지킴이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지켜야 할 법이라는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12:29 하나님의 유일성이 유일한 구속자 관념으로 연결되는 것은 사 37:16, 43:11이 잘 보여준다).

십계명의 요약인 두 계명 지킴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계명을 지키면 생명에 이르는 법이 된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이처럼 신약 성도들에게도 구약 성도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십계명의 요약인 두 계명 지킴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법, 곧 생명에 이르는 법이 되게 하여 율법과 복음이 상충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음을 보이셨다.

물론 기독교가 말하는 계명 순종으로 생명에 도달함의 개념은 타종교가 말하는 도덕적 계율 지킴으로 구원에 도달함의 개념(자력 구원론)과는 다르다. 기독교의 계명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전제된 것이고(은혜 구원론) 그것에 대한 보답의 차원으로 지키는 순종이기 때문에 계명 지킴으로 자기 의를 이루어 구원에 도달하려는 타종교의 구원 도식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신구약에 있어서 모두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셨을 때 그것들을 다 지키지 못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주신 것이 아니었고, 또 그것들을 다 지킴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의도로 주신 것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율법은 초등 교사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4:3). 유대인들은 율법을 초등 교사 정도로만 여기고 더 고상한 지식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들은 율법 자체를 완벽한 교사로 삼고 복음이 필요 없다고 하면서 물리쳤다. 율법은 스스로 자신을 초등 교사로 인정하면서 때가 되면 자신의 가르침의 한계 아래에서 벗어나 완벽한 교사인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향하라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그 음성을 듣지 않은 것이다(18:15, 18). 그들은 율법의 의로만 자신들의 의를 빛내고자 결정한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율법의 본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지 못하고(10:2) 율법이 궁극적으로 지시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고자 율법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거역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10:3). 하나님의 구원을 저버린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고, 인간의 부패한 죄성으로 인하여 율법의 역기능이 발생하는 것에 대하여 주의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십자가의 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들의 의의 공로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에 매여 하나님께 도달하고자 했기에 십자가의 의를 정죄하고 저주한 꼴이 되었고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바울이 율법의 저주라는 말을 한 것이 이 때문이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된다고 천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성경은 생명의 법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성도들이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는 이유이고, 그 가운데서 사랑의 이중 계명을 행함으로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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